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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리카 모레티는 항상 약간 미쳐있었다. 사랑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대표적으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2038년경에 이미 살점 몇 조각으로 사라져버린 인물이었는데…. 그녀와 같은 성을 갖고 있었다.

    안젤리카 모레티는 가끔 평온-죽음-을 바랄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그가 나폴리의 좁아터진 이층집, 그중에서도 벽을 완전히 들어내고 차고로 개조한 1층의 지하실에 숨어서 여전히 살아있다고 상상했다. 그러면 좀… 괜찮았다.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있다면 슬프지 않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그 여자는 여전히 슬플까?

    안젤리카 모레티는 비슷한 상흔을 가진 슬프고 무서운 여자를 한 명 안다. 함께 사라지자-vanish into you-고 했던 그녀의 말에는 깊은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이름을 붙인 것들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에게 이름을 붙인 것들도 전부 사라졌군요. 난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우리는 언젠가 둘 다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일순 믿음을 넘겨줬을 정도로.

    불 꺼진 창고 안. 환풍구가 없어서 담배 냄새가 눅눅하게 배어있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은 이상한 노스탤지어를 부여한다. 우리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만 솔직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늘 불을 껐다. 이따금 눈의 설익고 탄 안광만 교차하며 깜빡거렸고….

    어둠 속에서 축축한 얼굴로 자신이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던 여자는 금요일의 재즈바에서 마주친 무서운 여자 같지 않았다. 그냥 아주 슬퍼 보였다. 안젤리카 모레티가 가끔 거울 안에서 발견하는 그 여자가, 바로 옆자리에도 앉아 있었다. 자신이 존나 패서 뺨이 부었고, 입술이 터졌고, 몸 여기저기에 타박상이 멍이 되어가는 중이며, 심지어 일방적으로 때린 것도 아니라 자신의 무릎은 절반쯤 아작났음에도…. 이상하게 그 여자가 아주… 불쌍하게 느껴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 여자가 교도소에서 출퇴근할 때-심지어 비스트는 교도관에게도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탄다는 팻보이가 어떤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함께 사라진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살 사고를 가진 우울증 환자들이 돌연 행적을 감추는 것은 2044년에도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것 따위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배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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