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렵사리 재회한 두 사람은 어떤 관계조차 아닌 주제에 서로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은 것처럼 굴기 시작한다. ‘친구라도 되자고.’ ‘친구는 싫다고!’ ‘내가 너 때문에 힘든 걸 즐기는 거야?’ ‘너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게 맞긴 해?’ 미친.
자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우리는 끔찍하게 이별했다. 6년 만의 재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끔찍하게.
이유는 간단했는데, 미친 비스트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하루이틀 만나면서-그러니까 1년에 총 열흘 정도를 보자고 제안하는 셈이었다.- 마음껏 사랑하기를 원했고, 그건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너무 깊게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은 망가진다. 혹은 사라지거나. 저 슬픈 여자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스트의 입장에서 이건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어쨌거나 며칠 정도는 자유롭게 얼굴을 볼 수 있는 셈이니까. 6년간 도망쳤던 것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낫지 않은가!
한편 가여운 에카테리나는 정신병자에게 잘못 걸렸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좋아하는 사람을 하루나 이틀 정도만 좋아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약 4년간 세계를 떠돌며 재즈바란 재즈바는 전부 들러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어떤 미친 깡패가 재즈바에서 소란 피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도대체 저 여자는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 나는 그렇게 쉽게 죽거나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자신은 그저 저 역겹고 끔찍하고 잔인한 데다 바보 같고 더러운 금발의 여자가 다시 타오르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인데. 먼 길을 돌아서 겨우 만난 녀석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지독히도 안 맞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딱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시차만큼 사랑의 속도가 엇갈린다. 두 시간. 비스트가 늦은 아침을 먹을 때 에카테리나는 점심을 먹는다. 비스트가 정오의 햇빛을 받을 때 에카테리나는 이미 노을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런 문제다.
6년간 피해왔던 것이 무색하게도 어떤 감정이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도무지 속 시원한 결론이 나질 않았다. 어떤 관계도 될 수 없다는 것은 애매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잠시간 휴전 하기로 했고, 어쩌면 그 휴전을 계기로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야. 저것 봐. 헤어졌다가 재회하는 커플 중 70% 정도는 다시 헤어진대.’
‘헤어지자고?’
‘아니, 우리는 커플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서 저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왜 말을 그렇게 해?’
‘헤어진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을 먼저 꺼낸 건 너야. 안젤리카.’
‘하지만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잖아!’
중간중간 약간 싸워대기는 했지만.
‘네 웃음(laughter)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난도질(slaughter)당하는 것 같아.’ ‘그럼 다 때려치워.’ ‘다 때려치우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